본문 바로가기

피겨스케이팅

ISU 채점 시스템의 진화

1.  ISU 채점 방식의 출발점: 6.0 시스템의 종말

2004년 이전 피겨스케이팅은 ‘6.0 만점제’로 채점되었다. 기술력과 예술성을 통합적으로 평가하며 심판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컸다. 소치 동계올림픽 이전까지의 경기들은 “감동은 있었지만 기준은 모호한” 시기였다. 이에 대한 불신과 논란이 거듭된 끝에, 2004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점수 기반의 신채점 시스템(ISU Judging System, IJS)**을 도입한다. 이후 피겨는 "예술과 기술의 분리 채점"이라는 결정적 변화를 겪게 된다.


2. GOE의 확장: -3~+3에서 -5~+5로의 변화

GOE(Grade of Execution, 수행점수)는 기술요소 하나하나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초창기에는 -3~+3 범위로 부여되었으나, 2018-2019 시즌부터 -5~+5로 확장되면서 기술 표현력의 편차를 더 정밀하게 반영할 수 있게 되었다.

📌 변화의 핵심: 단순히 기술을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를 넘어, 얼마나 ‘완벽하게’ 수행했는지를 세분화하여 측정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트리플 러츠 점프가 같더라도 착지 후 흐름, 공중자세, 회전축 유지 여부에 따라 +1이 될 수도 있고, +4까지도 받을 수 있다.

📌 선수들의 대응: 일부 선수는 안정적인 수행으로 +GOE를 노리는 ‘실행 우선 전략’을, 다른 선수는 높은 기본 점수를 기반으로 ‘쿼드(4회전) 점프 우선 전략’을 택한다. 이는 점수 최적화 전략의 다변화를 낳았으며, 선수 개성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ISU 채점 시스템의 진화


3.  PCS의 구조 변화: 예술성의 재정의

PCS(Program Components Score, 프로그램 구성요소)는 스케이팅의 예술성과 완성도를 다섯 가지 항목으로 나눠 평가한다. **스케이팅 기술(Skating Skills), 전이와 연결(Transitions), 공연(Performance), 구성(Composition), 해석(Interpretation)**으로 구성된다.

📌 과거의 PCS는 기술에 대한 ‘보상성 점수’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즉, 점프가 훌륭하면 PCS도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2018년 이후 ISU는 각 항목을 명확히 분리 채점하도록 가이드라인을 강화했다.

📌 해석의 중심 이동: 해석(Interpretation)은 더 이상 단순한 표정 연기나 감정 표현이 아니다. 음악의 구조, 프레이징, 리듬에의 일치성이 핵심 평가 요소로 부상했다. 이로 인해 클래식 중심의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현대 음악이나 민속 음악의 활용도 증가하고 있다.


4. 채점 구조가 만든 전략적 차이

현대 피겨는 점수 계산이 복잡한 만큼, 선수와 코치진은 경기 전부터 구체적인 기술 배치 시나리오를 설계한다. 그중 일부 전략은 다음과 같다:

전략 구분설명예시 선수
후반 점프 집중 점프를 프로그램 후반에 배치하면 보너스 10% 적용 하뉴 유즈루, 사토 시운
+GOE 전략 기본 점수는 낮아도 모든 요소를 +4~+5로 수행하여 가산점 확보 김연아, 카오리 사카모토
구성 특화형 난도보다는 스케이팅 기술과 해석을 극대화 사샤 코헨, 제이슨 브라운

📌 이러한 전략은 채점 시스템을 읽고 움직이는 피겨의 지능화를 보여준다. 이는 피겨가 더는 “감성의 예술”에 머물지 않고, “수학적 정밀성과 예술성의 융합”으로 진화했음을 시사한다.


5.  심판 기준의 객관화와 기술 명세의 세분화

과거에는 심판의 눈에 ‘예뻐 보이는 연기’가 높은 점수로 연결되었다면, 현재는 정량화된 기술 체크리스트를 기반으로 채점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스핀 요소만 해도 “회전 수”, “기술적 포지션”, “중심 유지 여부”, “속도 변화” 등 세부 기준이 존재한다. 이는 채점의 객관성과 일관성을 높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또한, 채점표에는 모든 요소가 낱낱이 공개되며, 심판 간 편차가 클 경우 자동으로 조정되기도 한다. 즉, 기술적 숙련도뿐 아니라 심판 시스템의 자동 교정 기능도 포함된 것이 현대 채점 시스템의 특징이다.


결론: 피겨는 ‘읽는 스포츠’가 되었다

GOE와 PCS의 진화는 피겨를 단순한 감성 예술에서 전략적 판단과 정교한 설계가 요구되는 종합 예술 스포츠로 전환시켰다. 선수는 기술뿐만 아니라 음악 해석 능력, 체력 분배, 점수 최적화 전략까지 설계해야 하며, 관중도 경기 이해를 위해 ‘채점표를 읽는 법’을 배워야 하는 시대다.

ISU 채점 시스템은 ‘공정성과 다양성’이라는 이중 목표를 향해 진화해왔다. 그리고 이 변화는 피겨스케이팅의 본질을 훼손하기보다는 오히려 기술과 예술의 균형을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